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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학연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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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명 특정공업지구 지정 전후 울산 병영 주민의 기억과 의식
연구부서 울산학연구센터 과제분류
연구진 김유신 발행연도 2014
첨부파일 분량/크기 6.5M

1962년 울산의 특정공업지구 지정은 울산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에도 중대한 사건이었다.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출발을 알리는 것이었고, 이후 국가경제의 미래가 결정될 시작점이었기 때문이다.

특정공업지구 지정은 울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울산은 1962년부터 1997년까지 35년 사이에 인구 20만 명의 농촌도시에서 인구 100만 명의 광역도시로 거듭났으며, 굴지의 대기업들이 입지하며 한국의 공업화를 주도했다. 기존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중구보다 남구 지역이 우선적으로 도로가 정비되고 많은 건물이 들어서는 등 개발되면서 울산의 중구가 했던 행정적 중심지 역할은 남구로 이전되었다.

병영은 조선시대 경상좌병영이 있었고, 울산 최초의 사립교육기관인 병영초등학교, 병영31운동 등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일제시기부터 이미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고 지역 내에서도 개발에 대한 요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울산의 특정공업지구 지정 이후에도 이러한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제시기와 특정공업지구 지정 이후의 차이점이 있다면 여전히 병영 사람들은 병영이 가진 역사성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변의 다른 지역이 개발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병영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대한 요구도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 불만의 대상이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특히 젊은 층은 상당한 불만을 나타내었다.

지금도 병영사람들은 병영의 역사성과 병영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과거에 비해 약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배타성과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은 병영이 발전하기를 기대하면서 그 개발 방향을 고민하기도 하는데 공업단지와의 연관성이나 성남동, 삼산동과 같은 번화가로서의 개발이 아닌 병영성을 복원하거나, 병영의 역사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방향모색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모습은 병영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병영 개발에 대한 기대가 합쳐져서 나타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병영 원주민,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통해 특정공업지구 지정 전후 울산 병영의 모습을 미시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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