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발간한 ‘국민 삶의 질 2025’ 보고서를 살펴보니, 우리가 체감하는 삶과 통계 속 삶의 모습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수치상으로 보면 여가생활 만족도와 월평균 임금처럼 여가, 고용·임금, 소득·소비·자산과 관련된 지표는 개선되고 있다. 개인의 소득이 늘고 소비 여력 또한 확대되었다는 점은,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생활의 조건만큼은 이전보다 나아졌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가족·공동체, 건강, 안전과 관련된 지표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아무리 소득과 소비가 늘어도 서로 기대어 살아갈 기반이 약해진다면 삶의 질이 온전히 높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사회가 마주한 ‘초고령사회’라는 구조적 전환과도 맞닿아 있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이미 21.2%에 이르렀다(2026년 2월 기준). 고령화는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당면한 현실이다.
2024년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83.7세로 전년 대비 0.2세 늘었다. 이는 의료기술의 발전과 영양 상태의 개선, 생활환경의 변화가 축적된 결과이다.
그러나 건강수명, 즉 질병이나 장애 없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생활하는 기간은 72.5세에 머물러 있다. 살아가는 기간과 건강하게 지내는 시간 사이에 10년이 넘는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결국 의료와 돌봄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그 부담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과제가 된다.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삶의 만족도는 6.04점으로, OECD 평균 6.5점보다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2022년~2024년 평균). 이는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높아졌지만, 체감하는 삶의 만족은 그에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국민 삶의 질 2025’ 지표는 그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노후의 경제적 조건은 결코 안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은퇴연령층(66세 이상) 가구의 중위소득은 2190만원으로, 근로연령층의 58% 수준에 그친다. 이는 고령층의 소득 기반이 전반적으로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66세 이상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39.8%에 달한다. 고령층 10명 중 4명이 상대적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기대수명이 길어질수록 은퇴 이후의 삶도 길어지지만, 그 시간을 버틸 경제적 기반은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시간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은퇴 이후 늘어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는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다. 60대의 하루 평균 여가시간은 4.4시간, 70세 이상은 5.5시간에 이른다. 여가시간이 충분하다고 느끼는 비율도 각각 69.8%, 79.3%로 나타났다. 겉으로 보면 시간은 비교적 여유로워 보인다. 그러나 여가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25.2%에 불과했다. 시간이 늘었다고 해서 삶의 만족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의미 있게 쓰이지 못한 시간은 오히려 외로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와 시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관계와 참여의 여건 또한 녹록지 않다. 60세 이상에서 사회적 고립을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은 40.7%에 이른다. 고령층 10명 중 4명은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다고 느낀다. 또한, 공동체 참여 수준도 충분하지 않다. 60세 이상 고령층의 사회단체 참여율은 49.5%로 전년 대비 5.7%p 감소했고, 자원봉사활동 참여율은 10.6%에 머무르고 있다.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꾸준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초고령사회는 단순히 수명이 길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그 긴 시간을 어떤 조건 속에서 살아가느냐의 문제이다. 소득이 충분하지 않고, 사회적 관계의 끈이 약해진다면, 오래 사는 일은 축복이 아니라 감당하기 버거운 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대응의 방향도 분명해야 한다. 은퇴 이후의 소득 격차를 완화하고 최소한의 생활 안정을 보장하는 정책은 기본이다. 여기에 건강수명을 늘리기 위해 예방 중심의 건강관리와 돌봄 체계의 정비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령층이 지역사회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적 기반과 건강, 관계는 따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어느 하나만으로는 길어진 삶을 온전히 지탱하기 어렵다.
초고령사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길어진 삶을 외롭지 않도록, 경제적 불안에 흔들리지 않도록 든든한 사회적 울타리를 만드는 일이다. 오래 사는 사회를 넘어 ‘함께 사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진짜 삶의 질을 완성하는 마지막 열쇠가 아닐까 생각한다.
조미정 울산연구원 연구위원